‘윤완희, 박혜덕 부부를 아십니까?’
중부권
유방암 전문병원이었던 박혜덕 클리닉 원장(55·여) 그리고 충남대병원 외과과장을 지낸 뒤 항문전문병원 삼성외과를 운영하던 남편 윤완희
원장(57).
둘은 지금 대전에 없다. “한국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필리핀에서 의료 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겠다”며 윤 원장이
지난해 1월 떠난 뒤 박 원장도 올해 1월 남편과 합류했다. 이들은 필리핀 세부 시 마볼로 지역에서 도시 빈민과 코피노(한국인 남자와 현지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 등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극심한 가난 때문에 끼니 걱정을 하거나 배움의 길을 포기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자활과 진로상담 활동 등도 하고 있다.
중부권에서 ‘잘나가던’ 병원 두 곳을 모두 정리한 이 부부는 30대 초반부터 이를 구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먼저 재단법인 ‘희망고리’를 설립했다. 평생 모은 돈 5억 원을 재단 설립 자금으로 내놓았다. 국가에 귀속되는
돈이다.
필리핀에서의 상설적인 클리닉 운영에 필요한 자금으로 6억 원을 측근과 함께 대전사회복지기금 ‘사랑의 열매’에 지정 기부해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자금 조달도 가능케 했다.
둘은 일주일 중 사흘은 직접 운영하는 상설 클리닉에서, 이틀은 시설은 있으나 의사가
없는 인근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본다. 일주일에 200명가량, 지금까지 모두 8000명의 환자를 돌봤다. 의료 활동뿐만 아니라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극빈층 어린이를 위한 무료 급식센터를 지원하고, 배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진학과 진로를 상담하기도 한다.
가장
어려운 점은 외과 전공인 윤 씨 부부에게 암(癌) 등 내과 환자들이 찾아올 때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면 현지 의료체계상 두 부부가 직접 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씨 부부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희망고리 재단에는 후원자가 몰려 4월 초 현재 120명이 가입돼 있다.
후원자는 대부분 대전지역 의사그룹과 박 원장 유방암 환자들의 모임인 ‘핑크리본회’ 회원이나 지인들이다.
희망고리 재단 장효양
사무국장은 “20∼30년 의사로 살아왔던 두 사람은 입버릇처럼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환자를 돌보며 죽겠다는 얘기를 해
왔다”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